시편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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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류호준교수 댓글 3건 조회 716회 작성일 22-12-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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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에 걸려있는 성구"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81:10b

 

나이 먹으니 치아도 말썽을 부린다. 크리스천이 운영하는 치과에 간다. 충치 때문에 긁어낸 곳을 아말감이나 금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 독실한 신자이신 치과 선생님은 치료 의자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내게 성경 한 구절을 읽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시라고 하자 엄숙한 어조로 성경을 낭독한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이게 뭐지? 곧이어 물었다 성경 어디에 있어요?” “아니 시편을 전공하신 구약 선생님이 이 유명한 구절을 모르신단 말입니까?”하고 은근슬쩍 핀잔을 준다. 대꾸도 못 하고 쪼그라든 채로 아멘!”했다. 입을 크게 열라고 다그친다. 소름 끼치는 시간이 돌아왔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들리면서 내 머릿속의 영혼을 드릴로 갉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가득 채워 넣었습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영혼에 안도감이 찾아왔다.

 

기독 치과 의사들이 아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다. 시편 81편에서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10) 그런데 말이다. 이 구절은 독자적으로 서 있지 않다. 앞 구절에 매달려있는 말씀이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웨 네 하나님이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구절이 아닌가? 십계명 전문(前文)에서다.

 

이 구절과 함께 금방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바로의 폭정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시내 산자락에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자 야웨와 언약을 체결하고 곧이어 야웨 하나님은 자유민이 된 그들에게 앞으로 살아가야 열 가지 길을 제시하였다. 십계명이다. 구출 받은 백성이 기억해야 할 자유로 가는 이정표들이었다.

 

그런데 십계명을 이끌어가는 전문(前文, Preamble)이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앞서 언급한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웨 네 하나님이다.”(20:2)가 십계명의 전문이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구원 행동(God’s gracious saving act)으로 애굽에서 구출 받았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게 십계명 전문의 핵심이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은혜(“오직 은혜”, sola gratia)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한 분 하나님과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아득한 광야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니 시인은 상징적으로 입을 크게 열라라고 하신 것이다. 무엇으로 채운다고?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것으로 그들을 채우신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라니? 뭐가 모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광야 여정의 끝 무렵,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모압 평지에서 행한 모세의 설교 안에 힌트가 들어있다. 익숙히 잘 아는 구절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웨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즉 야웨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채웠어야 했다는 것이다.

 

한국어 성경은 모든 말씀으로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야웨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콜 모짜)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무엇이겠나? “입 기운이 아닌가? 풀어 설명하자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기운”(호흡, 바람, , 성령. , “루아흐”)과 그분의 가르침”(말씀. , “토라”)으로 광야 여정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다.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거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말씀과 성령은 분리되지 않는다.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있고, 성령은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활성화한다.

 

십계명 전문(“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야웨 네 하나님이니”)을 말씀하신 후 이어서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으니, 채우시는 재료는 아말감이 아니라, 이어나오는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십계명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신약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예수님이 명쾌하게 구약의 율법을 요약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렇다. 이 말씀을 지금 광야 여정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살아내라는 가르침이다. 구원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 그에 대한 감사로 율법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을 종교개혁자들은 율법의 제3의 용법”(Third use of the Law)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추신: 치과 의사 선생님은 내 충치를 아말감으로 채워 넣지 않았다. 좀 비싸더라도 금과옥조로 가득 채워 넣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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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은숙님의 댓글

김은숙 작성일

하나님 말씀을 '소매'하는 데(지역 교회 설교자) 도움을 주시는 '도매' 일을(성경신학자) 충실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산'은 성령님이겠네요.

류호준교수님의 댓글의 댓글

류호준교수 작성일

도매업자, 소매업자. 근데 나는 유통배달까지 하니 너무 힘들어서? ㅋㅋㅋㅋ 어쨌든 유익하다고 하니 안 할 수도 없고요.

김은숙님의 댓글의 댓글

김은숙 작성일

저 스스로 말씀묵상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신학자들 글에서 설교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은 교회에 봉사하는 학문이라고 하던데 좀 더 실효성있는 봉사를 위해 신학자들이 의무적으로 어느 정도는 도매와 유통 사업에 힘을 써줘야 할 것 같습니다. 늘 고맙습니다~